그 스승은 항상 "너는 너다(you are who you are)"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주지 말고 자신을 응시해야 하며, 자신다운 자신이 최선이라고 알려준다. 그 스승은 또한 “너는 네가 될 그것이다(you are who you will be)” 라고 촉구한다.
만일 내가 나의 현 상황을 온전히 파악하고 그 있는 그대로를 수용한다면 나는 오늘 미래의 나를 살 것이다.
나는 월든 호숫가 실험을 통해 적어도 이것을 배웠습니다. 만일 인간이 자신의 꿈을 향해 확신을 가지고 정진한다면, 그리고 자신이 상상한 삶을 살려고 감히 노력한다면, 그는 일상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성공과 조우할 것입니다.
그는 사소한 것들을 뒤로한 채, 보이지 않는 경계를 건널 것입니다. 새롭고, 보편적이며, 더욱 자유로운 인생의 법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것입니다. 혹은 오래된 법들이 팽창해 좀 더 자유로운 의미로 그에게 알맞게 해석될 것입니다. 그는 이제 좀 더 높은 차원의 질서의 허가를 받아 살 것입니다.
배철현 작감님의 "승화" 에 소개되는 문장들이다. 여러 책들을 디딤돌 삼아 오늘은 이 문장을 만나 잠시 머무르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의 꿈은 "미래의 내가 되는 것"이라고 해 본다.
그 동안 대단한 "꿈, 소명"이 없어도, 내 삶은 충분히 바쁘고 기쁜 날들이 많았다. 내게 주어진 사회제도의 안전지대 속에서 "Doing"을 성실히 행하여, 성취의 결과로 "Having"에 만족하려 노력해도, "먹고 사는 것 "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는 능력"이 내게 없음을 알아차렸다. 무엇을 하지 않고, 무엇을 가지지 않아도, 그냥 내가 있는 그대로 가치있다는 느낌에 머무를 수 없었다. 지금은 "Being"을 연습하고 있다.
이제는 아주 숙달된 "Doing"과 "Having"이 계속 되더라도, "Being"이 없다면, 나는 나를 계속 잊을테고, 나를 잃어버릴테고, 나와 점점 더 멀어질 뿐임을 알기 때문이다.
꼭꼭 숨겨왔던 "어떻게 아름답게 살 것인가? "라는 배부르고 등 따신 화두를 이제는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우러나오는 나를 표현하며 나를 바라보며 살아보려 한다. 지금 나는 또 할 일이 생겨서 또 좋은 것인가? 라는 의문이 잠깐 들지만, 이제는 때가되면 알겠지, 책 속에 문장들이, 그림이 또 나에게 길을 알려주겠지라는 느긋한 확신이 있다. 추락할 나 자신을 보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같은 의문으로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오랜 방황의 시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다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밑줄 긋고 메모해둔 여러 책 속의 문장들이 나를 안내해 주고 있었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의 "내면의 자아가 외면의 자아를 그대로 비출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 문장이 나를 잡았다.
데미안의 "내 속에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 이외에는 아무런, 아무런,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였다"라는 문장이 나로 이끄는 표지판이었을까?
시작의 기술 속에 "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는 문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연으로 들어가 나를 만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아 주고, 나를 받아들여 주는 일을 계속 할 것이다. 나는 내가 될 그것이다.
배철현 작감님의 "승화" 에 소개되는 문장들이다. 여러 책들을 디딤돌 삼아 오늘은 이 문장을 만나 잠시 머무르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의 꿈은 "미래의 내가 되는 것"이라고 해 본다.
그 동안 대단한 "꿈, 소명"이 없어도, 내 삶은 충분히 바쁘고 기쁜 날들이 많았다. 내게 주어진 사회제도의 안전지대 속에서 "Doing"을 성실히 행하여, 성취의 결과로 "Having"에 만족하려 노력해도, "먹고 사는 것 "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는 능력"이 내게 없음을 알아차렸다. 무엇을 하지 않고, 무엇을 가지지 않아도, 그냥 내가 있는 그대로 가치있다는 느낌에 머무를 수 없었다. 지금은 "Being"을 연습하고 있다.
이제는 아주 숙달된 "Doing"과 "Having"이 계속 되더라도, "Being"이 없다면, 나는 나를 계속 잊을테고, 나를 잃어버릴테고, 나와 점점 더 멀어질 뿐임을 알기 때문이다.
꼭꼭 숨겨왔던 "어떻게 아름답게 살 것인가? "라는 배부르고 등 따신 화두를 이제는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우러나오는 나를 표현하며 나를 바라보며 살아보려 한다. 지금 나는 또 할 일이 생겨서 또 좋은 것인가? 라는 의문이 잠깐 들지만, 이제는 때가되면 알겠지, 책 속에 문장들이, 그림이 또 나에게 길을 알려주겠지라는 느긋한 확신이 있다. 추락할 나 자신을 보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같은 의문으로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오랜 방황의 시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다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밑줄 긋고 메모해둔 여러 책 속의 문장들이 나를 안내해 주고 있었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의 "내면의 자아가 외면의 자아를 그대로 비출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 문장이 나를 잡았다.
데미안의 "내 속에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 이외에는 아무런, 아무런,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였다"라는 문장이 나로 이끄는 표지판이었을까?
시작의 기술 속에 "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는 문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연으로 들어가 나를 만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아 주고, 나를 받아들여 주는 일을 계속 할 것이다. 나는 내가 될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