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20년 (자유주제)내 이웃의 아이

이규****
2020-12-21
조회수 131

침대에 누워 TV를 켭니다. 웃고 떠드는 아이와 아빠의 모습이 보입니다. 슈퍼맨이 돌아왔나 봅니다. 그 모습이 불편해 채널을 돌립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보지만 이 불편함을 없애줄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한바탕 웃어젖히면 좋으련만 이미 불편해진 마음은 다시 돌아올 줄 모르네요. TV를 끄고 스마트 폰을 잡습니다. 단톡방의 메시지가 올라와 있네요. 아이와 캠핑을 갔답니다. 사진을 참 많이도 올렸습니다. 계곡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의 모습을 참 정성스럽게 찍고 심혈을 기울여 골라 단톡방에 올린 듯합니다. 과식을 하지 않았지만 명치끝이 답답합니다.

사무실도 답답하군요. 잠시 산책이 필요할 듯합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문이 열리길 기다립니다. 얼굴은 알고 있지만 그리 친하지 않은 부장님과 마주쳤습니다. 결혼은 했냐, 아이가 몇이냐, 묻습니다. 다음은 몇 살이냐 묻겠지요. 11살, 8살입니다. 야... 이제 다 키웠네. 걱정이 없겠어! 일찍 결혼해서 아이까지 다 키워 놓고 말이야!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 웃는 얼굴에 원투 펀치를 날리고 싶지만 억지로 밝게 미소 지으며 그렇다 말합니다.

8살 아들의 이름은 찐이 입니다.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죠. 어렸을 때부터 많이 아팠습니다. 뇌전증이었죠. 하루에도 수십 번 경련을 했습니다. 응급실을 많이 갔고, 병원 생활이 익숙해질 정도로 자주 입원을 했습니다.

찐이는 아직 말을 못 합니다. 20개 정도의 단어를, 가족들만 알아들을 정도의 발음으로 소리 냅니다. 놀이터에서 비켜, 라는 말을 하지 못하니 앞의 친구를 잡아당기기도 합니다. 때리거나 괴롭힌다 오해하기 쉽죠. 찐이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찐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게 되죠.

8년을 키워도 힘이 듭니다. 앞으로도 계속 힘이 들겠죠. 그래서 다 키웠다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났나 봅니다. 슈퍼맨이 와도 찐이를 보는 건 힘들 겁니다. 그래서 슈돌이 보기 싫었나 봅니다. 찐이와 캠핑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그래서 캠핑장 사진에 명치끝이 답답했나 봅니다.

11살 딸의 이름은 빤뽀 입니다. 마음에 드는 애칭입니다. 제가 지었죠. 빤뽀가 태어나기 전에는 신혼을 즐겼습니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차려 놓고, 퇴근 후 마트에서 만나 장을 보고, 스테이크를 굽고, 야심 차게 동태찌개도 끓여 먹었습니다. 동태찌개에서 왜인지 초콜릿 맛이 났지만 행복했습니다. 아직도 초콜릿 맛 동태찌개 레시피가 궁금하긴 합니다.

빤뽀가 태어났습니다. 빤뽀와 함께 가는 동네 산책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나를 닮은 새로운 존재와 함께 걷는 신선함에 매료되었습니다. 카페 사장님이 특히 빤뽀를 귀여워했습니다. 유모차에 태워 카페에 가면 꼭 서비스가 나왔죠. 빤뽀는 양쪽 집안의 첫 아이로 모든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했습니다.

이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찐이의 장애를 없애야만 했죠. 계속 질문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말을 할까? 언어치료를 더 늘려야 할까? 인지의 문제이니 인지 치료를 늘릴까? 인지를 늘리려면 감각이 중요하니 감통 수업을 늘려야 하나? 감각도 대근육 발달이 우선이니 체육 수업을 늘릴까? ABA라는 게 있다던 데 그걸 한 번 알아볼까? 조금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언어치료가 효과가 좋다는 데... 그것도 한 번 알아봐야 하나?

8년간 질문하고 생각했더니 그래도 하나는 알게 되더군요. 장애는 '제거'하는 게 아니다, 라는 사실을 말이죠.

이자벨 카리에의 <... 아나톨의 작은 냄비 La petite casserole d‘Anatole>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나톨은 작은 냄비를 몸에 달고 태어났습니다. 땅에 질질 끌리는 무거운 냄비는 아나톨을 불편하게 만들죠. 불편한 냄비를 달고 다니는 아나톨을 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따돌리거나 무시하기도 하죠. 아나톨은 결국 숨어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편해질 것 같았거든요.

다행히 세상에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아나톨에게 말을 걸었죠.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냄비를 넣을 수 있는 가방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나톨은 가방을 메고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습니다.

찐이도 작은 냄비를 하나 달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냄비 때문에 찐이는 불편합니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이 불편함을 병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 병을 치료해 주는 게 당연한 부모의 의무라 여겼죠. 아이보다는 냄비에 집중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냄비를 끊어주려 했죠. 그게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말입니다.

진짜 끊어야 했던 건 제 생각이었습니다. 진짜 끊어야 했던 건 냄비만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었습니다. 진짜 끊어야 했던 건 장애를 극복해야만 하고 완전히 고쳐야만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진짜 끊어야 했던 건 장애인을 자신도 모르게 차별하고 혐오하는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인식이었습니다.

아나톨이 냄비를 머리에 쓰고 숨어버렸듯 수많은 '찐이'들은 실제로 숨어버렸습니다. '내 이웃의 아이'에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찐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너그러운 시선으로 '내 이웃의 아이'를 바라보면 '찐이'는 웃으며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장애는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찐이'는 여러분들과 그냥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장애인과 그 가족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이웃의 이야기이며,

내 이야기입니다.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