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20년 (자유주제)2020년, 그래도 지우지는 말아주세요

도혜민
2020-12-23
조회수 79


대한민국 국민, 아니, 지구촌에서 호흡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올해는 무엇으로 기억될까요?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2020년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자고 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삭제(delete)'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냥 2020년은 없던 셈 칩시다."
"올 한 해는 통째로 지워버리고 싶다."
"인간적으로 2020년은 물려줘야 해."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입니다.


2020년 12월 22일 22시 44분 기준 전 세계 확진자 77,853,610명, 사망자 1,712,108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51,460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고 722명이 사망을 했다고 하네요.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을 입어서 전 세계의 빚이 올해 말 약 277조 달러, 30경 9400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30경이면 0이 17개나 되는 상상도 되지 않는 숫자입니다.


국내 영세한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생계에 위협을 받을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고, 코로나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여행업계에서는 폐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쏟아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취업준비생 또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신학기에 학교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하고, 벗을 수 없는 마스크 때문에 심지어 같은 반 친구들 얼굴도 알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냈습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20학번 새내기에게는 '미개봉 중고'라는 웃지 못할 꼬리표도 붙었고요.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있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잔기침 조차도 삼켜야 하는 때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 줄어든 일거리 등으로 몸은 조금 편해졌을지 모르겠지만 심리적 피로감은 몇 배나 더 커진 기분입니다. 


다시 돌아봐도 긍정적인 부분을 찾기 힘든 2020년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온통 회색으로 칠하게 될 것 같습니다.



2020년 1월,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 2020년 1월 20일, 중국 우한에서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35세 여성 코로나 확진
  • 2020년 1월 24일, 우한에서 상하이를 거쳐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55세 남성 코로나 확진
  • 2020년 1월 26일과 27일, 세 번째, 네 번째 코로나 확진자 발생
  • 2020년 1월 30일, 코로나 확진자 3명 추가


코로나19라는 이름이 사방에서 점점 많이 들리기 시작할 때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가 태어날 즈음부터 확산이 시작되었던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이가 누워있다가 뒤집고, 배밀이를 하고, 두 팔과 두 다리로 기어 다니고, 물건을 잡고 일어설 때까지도 확산세가 꺾이지 않습니다. 겨울의 중간에 태어나서 봄, 여름, 가을을 거치고 또다시 겨울이 되었는데도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더 움츠려 들게 하네요.


아이는 태어나서 사람들이 밖에서 마스크를 끼지 않고 다니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진정한 M세대인 것 같네요. 밀레니얼 세대가 아닌, 마스크 세대요.



그래도 지우지는 말아주세요.


올해, 어느 누구나 F5(새로고침) 버튼을 누르고 싶을 것입니다. 그냥 없는 셈 치고 싶기도 할테고요. 그래도 저는 올해를 새로고침하기도, 지워버리기도 싫습니다. 그래서는 절대 안됩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절망적인 상황뿐이지만, 2020년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얻었기 때문이죠.


정교한 단어나, 대단한 몸짓이나, 화려한 문장을 가져다 놓아도 표현하자면 늘 아쉬움이 남는 이 존재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웃게 되었습니다. 기운이 없다가도 아이의 옅은 미소에 또다시 힘이 솟았습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어 포기한 것들이 그리울지언정 현재의 시간과 결코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아기는 본인이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세상에 나왔고, 전염력 강하고 지독한 바이러스 앞에 내던져지게 되었습니다. 비단 바이러스뿐 아니라 아이는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위험에 처하게 될까요? 경제, 교육, 환경, 종교 등 각 분야 곳곳에 우리를 위협하는 요소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생각하면 막막하고 기운이 빠지며 두렵기까지 한 현실 앞에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싶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외면한 현실들이 미래에 아이들이 짊어질 짐이 될 테니까요.


내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작은 것부터 정의와 책임감을 가지고 살고자 합니다. 지금 내가 하는 작은 실천이 다음 세대에게 선물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더불어 2021년에는 부디 마스크를 벗어던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기운이 땅에 내려앉아 새싹이 나고 꽃이 피면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함께 지금껏 보지 못했던 아름드리나무와 예쁜 꽃, 넓은 바다, 책으로만 보았던 동물들을 자유롭게 만나러 다닐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절망적인 소식들이 쏟아질 때면 자연히 포기 쪽으로 몸과 마음이 기운다. 분노와 무력감 사이를 오가다 보면 이 나라를 외면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내가 버리는 짐을 어린이가 떠안겠지. 나는 계속 싸울 것이다. 그리고 조그마한 좋은 것이라도 꼼꼼하게 챙겨서 어린이에게 줄 것이다. 거기까지가 내 일이다. 그러면 어린이가 자라면서 모양이 잘못 잡힌 부분을 고칠 것이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스스로 되뇌며 올바른 길을 찾는 것>, 김소영


원문URL : https://brunch.co.kr/@langman/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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