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2(습관방) - 자유서평 기록들

<1차> 언어로 확인하는 우리의 가치관

김태연
2020-05-25
조회수 1169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 한국어에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영어 수업

✒ 허새로미, 현암사


작가 허새로미는 대학 졸업 후 7년간 토플 강사로 일하다 뉴욕을 유학을 떠났는데,

뉴욕에서 바이링구얼리즘(Bilingualism)에 눈을 뜨게 되어 한국에 돌아온 후,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점에 바탕을 둔 소통 중심의 강의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 꾸준히 영어수업을 듣고, 관련 도서를 틈틈히 읽기도 하기 때문에

이 책의 살 때의 나의 기대는 '영어를 더 잘 배우는 법을 알게 되면 좋겠다' 였다.

하지만, 실제 책은 영어 공부와는 거의 상관이 없어서 나의 무지한 기대는 무너졌지만,

책의 내용도 좋고, 글도 좋아서 밑줄을 엄청나게 그어대며 읽었다.


이 책은 한국인의 몇 가지 언어습관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반가부장적 시선과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어로 표출되는 한국 문화에 대한 글이다.


작가는 한국어를 이렇게 평한다.

모든 상호 소통은 어떤 면에서 왈츠이고 또한 전쟁이지만,

특히 한국어는 한시도 방심할 수 없어 피로한 전쟁터이다.

단순히 존재와 반말의 눈치 싸움뿐 아니라

주어를 자주 생략하고, 질문을 꺼리고, 말을 하다가 마는 것 모두

한국어 사용자가 끌려 들어가는 전쟁에 포함된다.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p.42)


또한 한국어가 고맥락 언어인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고찰한다.

눈치(nunchi)라는 단어는 영어 위키피디아에도 등재되어 있다.

'타인의 기분을 들어주고 읽어주는 미묘한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설명을 보면 한국인들의 높은 사회적 민감성(high social sensibility)에서 비롯되는 능력이며

조화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남들이 말하지 않은 것까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언어와 문화는 서로 파고들며 꼭 붙어 함께 진화한다.

한국어가 말의 가장 작은 단위인 형태소까지 샅샅이 살펴야 상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고도로 맥락화된 언어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p.28~29)


남자친구나 상사에게 가끔 듣는 말이 있다.

"따박따박 따지지 좀 마."

나는 궁금해서 물어본 것일 뿐인데,

그리고 나와 다른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 궁금하고,

내 의견을 더 전달해보고 싶을 뿐인데,

이런 지청구가 들어오면 입을 다물어 버리게 된다.


말을 적게 하는 것이 권력의 상징이 되면,

질문하고 자꾸 말 시키는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나의 권위를 해치는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p.33)

누군가 "너는 한 마디도 안 지려고 한다"라고 할 때 그건 사실 칭찬이다.

해당 언어의 본질을 내가 잘 파악하고 있다는,

자신이 한국어의 위계적 특성을 활용해 관계를 통제하지 못하도록

내가 가로막고 있어 불편하다는 신호이므로.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p.44)

나는 누군가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알고 싶을 뿐인데.

한국어는 고맥락인 해당 문화를 아주 잘 반영하는 언어이다.

고맥락 문화란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메시지 전달보다,

암시적이며 때로는 숨겨져 있는 신호로 소통하는 문화를 말한다.

사실 질문은 원래 긴장을 동반하는 발화이다.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p.200, 202)

그리고 종종 드세다는 소리도 잘 듣는다.

어느 날 문득 세다, 드세다라는 표현은 남자에게는 쓰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렸다.

저 사람 드센 사람이야.

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이야. 

저 사람에게 자기 생각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불쾌하게 해. 

타인을 드세다고 부르는 것은 자기 고백에 가깝다. 

상대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씁쓸함과 약간의 비통함 그리고 악의를 담아, 좀 복수하듯이 이르는 소리다. 

남을 드세다, 당돌하다, 맹랑하다고 부를 정도의 권력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는, 

혹은 그런 권력을 선언하고 싶다는 무의식의 목소리다. 

화자와 청자의 권력차가 없다는 가정하에 그 뜻이 절반 이상 날아가버리는 언어는 사실상 경고 신호다.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p.89)

희뿌옇게 불편하지만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한 작가의 설명에 청량감을 느꼈다.

역시 언어는 사회를, 그 사회의 문화를 반영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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