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말고 자유롭게 살아."
2019년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 소설에서 찾은 이 문장은 12년의 교직 생활에 잠시 쉼표를 갖기 시작한 서른 여덟의 나에게 가장 와 닿는 말이었다. 이 한 문장을 노트에 적으면서 나는 꽤 울었던 것 같다.
나는 착하게 놀고, 착하게 공부하고, 착하게 일하면서 대한민국 교사가 되었고,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친구와 사이 좋게 지내고, 공부 열심히 하자."며 착한 학생 만들기에 집중했다. 그런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착하게 살기'는 내가 이성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워킹맘이 되면서 제일 큰 문제가 되었다. 착한 딸, 착한 아내, 착한 엄마, 착한 선생님이 되려는 나의 필사적인 노력은 시간이 지날 수록 나의 외로움을 키웠다. 나는 정말 혼란스러웠고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싶었을 때, 기적처럼 이 문장을 만났다.
초등학교 때 학교 대표로 나간 전국 백일장에서 '짝꿍'을 주제로 글을 썼는데, 잘 썼다고 상을 주면서도 심사평이 곱지 않았다. '너무 아름다워서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라며 내 글을 완전히 꼬집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 심사평은 단지 내 글만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늘 해피엔딩을 꿈꾸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처럼 슬픔을 감추고, 분노를 누르며, 울고 싶어도 참고, 예쁘고 웃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는 편견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다. 생의 절반을 지나갈 쯤에서 비로소 꼭 착하고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고, 내가 가진 편견을 결국 인정했다.
휴직을 하고 다시 읽고 싶은 책 가운데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이 있었다. 누구보다 멋지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컸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문장들이, 다시 보니 방금 내린 에스프레소 향처럼 진하게 아찔하게 와 닿았다. 그 에스프레소를 아침에도 밤에도 마시면서 나는 깨어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불행도 슬픔도 묘사받을 자격이 있다.'는 작가의 말에 용기를 얻어 칭찬하고 감사하는 글쓰기가 아닌 외롭고 힘든 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책상 속 감사노트와 칭찬노트를 잠시 높이 올려 두고, '쓰기의 말들' 문장을 필사하며, 미사여구가 아닌 정확한 언어로 꾸밈 없이 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나는 정말로 자유가 좋아졌다.
10쪽.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최승자)
18쪽.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에 품위를 부여해 주는 일이네요. (어느 학인)
75쪽. 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은유)
87쪽.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시차를 두고 누군가에게도 반드시 일어난다고 했던가. 정말로 그렇다면 자기 아픔을 드러내는 일은 그 누군가에게 내 품을 미리 내어 주는 일이 된다.(어느 학인)
214쪽. 작가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사람들을 흔들어 놓는 일입니다.(수전 손택)
219쪽. 좋은 글은 자기 몸을 뚫고 나오고 남의 몸에 스민다.(은유)
220쪽.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리베카 솔닛)
정확하고 솔직하게 나의 아픔과 부끄러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타인의 고통과 슬픔이 담긴 문장에 깊게 공감하게 되었다.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력의 향상은 내 안의 슬픔을 치유하는 방의 크기를 늘려 주었고, 나는 넓어진 방 안에서 함께 울고 함께 위로하며 충분히 쉴 수 있었다.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을 통해 나 역시 '자기만의 언어를 찾기 위해' 문장 노트를 만들었다. 현대 사회에서 만나기 드문 '올드걸'을 만나기 위해 하루 육아도 쉬었다. 착하게 내가 다 하지 않고 자유롭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나는 훨씬 충만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필사를 하고 있으면 아이가 와서 (가끔) 읽는다. 필사 문장을 때로는 아이가, 때로는 함께 낭독을 하면서 어렴풋이 엄마가 쓴 문장의 낱말들을 더듬어 본다.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의 말들은 익숙하고 친근하지만 표현에 한계가 있다. 그림책에서 말하는 착하고 바르게도 중요하지만 솔직하고 자유롭게 자기 감정을 숨기지 않기로 아이와 약속한다.
유유출판사의 '쓰기의 말들' 덕분에 사춘기 이후 팬심이 다시 솟구쳤고 은유 작가님의 열혈독자가 되었다. 마침 이번주에 절판되었던 올드걸의 시집이 재출간되어 정말 서점을 돌아다니며 5권을 샀다. 책을 착하게 깨끗하게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밑줄 그으며 보게 되는 기적을,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나만 체험할 수 없기에 동생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무슨 전집이냐고 물어보는 남편에게도 선물해야겠다. 참 기분 좋은 밤이다♡
"착하게 말고 자유롭게 살아."
2019년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 소설에서 찾은 이 문장은 12년의 교직 생활에 잠시 쉼표를 갖기 시작한 서른 여덟의 나에게 가장 와 닿는 말이었다. 이 한 문장을 노트에 적으면서 나는 꽤 울었던 것 같다.
나는 착하게 놀고, 착하게 공부하고, 착하게 일하면서 대한민국 교사가 되었고,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친구와 사이 좋게 지내고, 공부 열심히 하자."며 착한 학생 만들기에 집중했다. 그런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착하게 살기'는 내가 이성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워킹맘이 되면서 제일 큰 문제가 되었다. 착한 딸, 착한 아내, 착한 엄마, 착한 선생님이 되려는 나의 필사적인 노력은 시간이 지날 수록 나의 외로움을 키웠다. 나는 정말 혼란스러웠고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싶었을 때, 기적처럼 이 문장을 만났다.
초등학교 때 학교 대표로 나간 전국 백일장에서 '짝꿍'을 주제로 글을 썼는데, 잘 썼다고 상을 주면서도 심사평이 곱지 않았다. '너무 아름다워서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라며 내 글을 완전히 꼬집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 심사평은 단지 내 글만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늘 해피엔딩을 꿈꾸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처럼 슬픔을 감추고, 분노를 누르며, 울고 싶어도 참고, 예쁘고 웃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는 편견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다. 생의 절반을 지나갈 쯤에서 비로소 꼭 착하고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고, 내가 가진 편견을 결국 인정했다.
휴직을 하고 다시 읽고 싶은 책 가운데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이 있었다. 누구보다 멋지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컸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문장들이, 다시 보니 방금 내린 에스프레소 향처럼 진하게 아찔하게 와 닿았다. 그 에스프레소를 아침에도 밤에도 마시면서 나는 깨어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불행도 슬픔도 묘사받을 자격이 있다.'는 작가의 말에 용기를 얻어 칭찬하고 감사하는 글쓰기가 아닌 외롭고 힘든 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책상 속 감사노트와 칭찬노트를 잠시 높이 올려 두고, '쓰기의 말들' 문장을 필사하며, 미사여구가 아닌 정확한 언어로 꾸밈 없이 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나는 정말로 자유가 좋아졌다.
10쪽.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최승자)
18쪽.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에 품위를 부여해 주는 일이네요. (어느 학인)
75쪽. 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은유)
87쪽.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시차를 두고 누군가에게도 반드시 일어난다고 했던가. 정말로 그렇다면 자기 아픔을 드러내는 일은 그 누군가에게 내 품을 미리 내어 주는 일이 된다.(어느 학인)
214쪽. 작가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사람들을 흔들어 놓는 일입니다.(수전 손택)
219쪽. 좋은 글은 자기 몸을 뚫고 나오고 남의 몸에 스민다.(은유)
220쪽.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리베카 솔닛)
정확하고 솔직하게 나의 아픔과 부끄러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타인의 고통과 슬픔이 담긴 문장에 깊게 공감하게 되었다.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력의 향상은 내 안의 슬픔을 치유하는 방의 크기를 늘려 주었고, 나는 넓어진 방 안에서 함께 울고 함께 위로하며 충분히 쉴 수 있었다.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을 통해 나 역시 '자기만의 언어를 찾기 위해' 문장 노트를 만들었다. 현대 사회에서 만나기 드문 '올드걸'을 만나기 위해 하루 육아도 쉬었다. 착하게 내가 다 하지 않고 자유롭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나는 훨씬 충만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필사를 하고 있으면 아이가 와서 (가끔) 읽는다. 필사 문장을 때로는 아이가, 때로는 함께 낭독을 하면서 어렴풋이 엄마가 쓴 문장의 낱말들을 더듬어 본다.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의 말들은 익숙하고 친근하지만 표현에 한계가 있다. 그림책에서 말하는 착하고 바르게도 중요하지만 솔직하고 자유롭게 자기 감정을 숨기지 않기로 아이와 약속한다.
유유출판사의 '쓰기의 말들' 덕분에 사춘기 이후 팬심이 다시 솟구쳤고 은유 작가님의 열혈독자가 되었다. 마침 이번주에 절판되었던 올드걸의 시집이 재출간되어 정말 서점을 돌아다니며 5권을 샀다. 책을 착하게 깨끗하게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밑줄 그으며 보게 되는 기적을,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나만 체험할 수 없기에 동생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무슨 전집이냐고 물어보는 남편에게도 선물해야겠다. 참 기분 좋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