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2(습관방) - 자유서평 기록들

<3차>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김수진
2020-06-14
조회수 303

뉴턴의 아틀리에 김상욱 유지원 민음사 

 아이들과의 소중한 추억 하나.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을 읽고 책에 나와 있는 미술놀이를 했어요. 제가 원, 삼각형, 사각형, 아니면 아무 모양의 도형을 제시하면 아이들이 생각나는 대로 그림을 완성하는 놀이죠. 코끼리가 되기도 하고, 토끼, 구름, 집 등 경험과 상상력에 의한 그림은 한계가 없이 다양해요. 아이들이 참 좋아했던 놀이였죠. 이 책 <뉴턴의 아틀리에>는 어른들의 생각놀이, 말놀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뉴턴의 아틀리에>는 물리학자 김상욱과 타이포그래퍼 유지원, 서로 다른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두 젊은 연구자들이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 민음사에서 출간한 책입니다. 이 책의 26개의 키워드들을 매번 두 필자가 번갈아 가면서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책의 구성은 총 5장으로 나뉩니다. 1장은 관계와 연결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 소통, 유머, 편지, 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2장은 관찰하고 사색하는 마음에 대한 주제로 결, 자연스러움, 죽음, 감각, 보다, 가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3장은 인간과 공동체의 탐색으로 사회학 분야를 주제로 두 문명, 언어, 꿈, 이름, 평균에 대한 글입니다. 4장은 수학적 사고의 구조로 수학에 대한 주제로 점, 구, 스케일에 대한 글입니다. 마지막 5장은 물질의 세계와 창작으로 물리학에 관한 주제로 검정, 소리, 재료, 도구, 인공지능, 상전이, 복잡함에 대한 글입니다.                

                              

제목 <뉴턴의 아틀리에>에서 ‘뉴턴’은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알려진 과학자의 이름을, ‘아틀리에’는 화가, 조각가, 조형예술가들이 작품을 창작하는 작업 공간을 뜻한다고 합니다. 뉴턴은 과학, 아틀리에는 예술, 이렇게 영역을 나누려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과학과 예술의 속성이 서로 스며든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곳, 그러니까 ‘뉴턴의 아틀리에’적인 순간들이 펼쳐지는 공동 공간이라는 뜻이라네요. 

저는 저자 김상욱의 전작 <김상욱의 과학 공부>를 읽고 양자역학과 우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tvn 알쓸신잡3에 출연하신 것을 보고는 그의 광팬이 되었죠. 문과생인 남편과 딸아이에게는 잔소리처럼 <김상욱의 과학공부>를 읽어보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지 모릅니다. 김상욱님의 신작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입했는데, 공동 저자인 유지원씨에게 더 매력을 느끼니 이것은 또 무슨 일인가요. 

유지원은 그래픽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피 연구자입니다. 그는 과학학회와 논문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는 타이포그래퍼입니다. 분과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통하는 데에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수학과 과학의 엄정한 방법론이 질서를 찾아가고 검증을 거치는 과정은 경이롭고 아름답다고 하네요. 유지원 저자에게는 과학과 기술이 효율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언제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합니다. 

김상욱과 유지원 두 사람은 어떻게 함께 책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어쩌면 제가 찾고 있는 공부하는 이유와 삶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두 저자의 글을 보고 주변에서 사고방식이 닮았다고도 한다네요. 성별, 연령, 학교, 전공에 성장 환경까지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말이죠. 딱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둘 다 학문적으로 독일의 작센에서 학업을 했었다는 점이죠. 작센에서 공부한 독일 친구들의 논고들을 이후에 보니 다들 비슷한 사고방식을 공유하고 있다네요. 예를 들어 미술 작품을 보러 갔을 때, 두 분 다 ‘어떻게’를 먼저 질문한다고 해요. 회화에서는 화학의 질문이 되기도 하고 설치작의 스케일이 커지면 공학의 질문이 되기도 한다네요. 그렇게 ‘어떻게’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왜’ 그렇게 했는지 작가의 상황과 의도, 마음에 한층 다가서게 된다고 합니다. 작센 주의 학풍은 당위에 저항하고, 편견에 질문하고,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열어둔다고 합니다.

이 책의 특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책의 디자인이 아주 독특합니다. 책표지의 재질이 매끈매끈해서 만지면 기분이 좋습니다. 책 모서리에는 보라색 실과 파란색실이 교차되어 있어요. 책날개에 연결되어 있는데 김상욱님은 보라색 실을 잡고 있고, 유지원님은 파란색실을 당기고 있죠. 이것도 디자인하신 유지원님의 장치라네요. 책 중간중간 실이 삐져나온 부분이 있어 인쇄가 잘못되었나 한참을 들여다봤는데, 이것도 디자이너가 고심해서 만든 것으로 쇄가 거듭될수록 실이 더 많이 삐져나오게 한다네요. 유지원님의 여유와 유머가 느껴지는 부분이었어요. 

둘째는 글씨의 폰트가 김상욱과 유지원이 쓴 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 저는 글씨체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었어요. 첫 장에 ‘글자의 생김새로 보는 이야기들’ 이라는 유지원님이 쓴 글자체에 대한 글이 있어요. 8가지 글자체를 비교해주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글자체의 유래와 개인의 경험에 따라 글자의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요. 8번째 무심히 보았던 글자체가 유지원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네요. 셋째, 26가지 주제에 대해 과학자는 예술을 예술가는 과학을 이야기합니다. 반대의 이야기가 아니고 주제를 풍성하게 해주고 관점을 넓혀주니 제가 풍성해지고 쑥쑥 커가는 느낌이 듭니다. 나라면 저 주제에 대해 어떤 글을 쓸지 궁금해집니다.             

                 

이 책을 읽은 저의 느낌은요, 첫째, 과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더 있었다면 얼마나 더 재미있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어요. 양자역학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가 나오는데 도무지 감이 안 잡히네요. 책 83쪽에 제 맘을 알았는지 이런 글이 나와요. “당신이 양자역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화가나도 당신 잘못은 아닙니다. 양자해석의 창시자 닐스 보어는 양자역학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에 문제가 있다고까지 말했으니까요. 중첩이나 관측이라는 ‘현상’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런 현상을 제대로 기술할 언어가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겁니다.” 과학을 일반인들에게 어떻게든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시는 다정한 물리학자 김상욱님께 미안한 생각까지 들더군요. 

둘째, 좋은 책은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독일 작센 주의 학풍에서 나오는 학문적 태도일까요? 겸양의 마음으로 다른 분야에 대해 궁금해하며 인식을 확장시킬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책은 분야 간 소통, 발상의 전환을 하고 싶으신 분에게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또, 과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만약 나에게 26가지 주제 중 한 가지를 약사의 언어로 표현하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저는 ‘이야기’라는 주제를 골라봤습니다. 25년 경력의 약사로서 일단 약국 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대충 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단 한번 스캔을 합니다. 머리카락의 상태와 피부색과 혈색, 영양상태, 자세, 체형이 파악이 되면서 앓고 있을지도 모르는 질병과 영양제가 떠오릅니다. 얼마나 맞을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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