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2(습관방) - 자유서평 기록들

<2차> 12세기 독서 vs 현대 독서

최혜란
2020-06-08
조회수 920

이 책의 저자인 이반 일리치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역사학 박사학위 소지자이다. 그리고 1951년에는 사제서품을 받아 로마 가톨릭 신부가 되었는데 워낙 현대사회에 비판적인 학자이다보니 교회에 대한 비판도 이어나갔고,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스스로 사제직을 버렸다. 이처럼 독특한 이력을 가진 역사학자는 이 책을 왜 썼을까?

나는 후고Hugues de Saint-Victor 의 『디다스칼리콘Didascalicon(가르침, 교육, 지식 입문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곧 후고의 설명이 나온다. - 옮긴이)을 해설하면서 중세의 독서 습관에 대한 역사적 행동학과 더불어 12세기에 이루어지던 상징으로서의 읽기의 역사적 현상학을 제시하고자 한다.

저자 이반 일리치는 이 책을 후고의 저작 디다스칼리콘의 해설서로 소개하며, 읽기의 역사를 설명하고자 한다. 추가로, 기술(Technology)의 발전이 어떻게 텍스트의 형식에 미치는 영항과 그로 인해 사람들의 정신작용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도 기술(describe)하고 있다. 7장에 집약되어 있는 저자의 통찰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다음 기회에 좀 더 탐구할 영역으로 남겨두기로 하고…

12세기에는 사람들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지금과 차이가 있을까?

후고는 당시 수도원에서 지내는 수사(修士, monk)이자 학자였는데, 그는 어린 수사를 청자로 설정하여 디다스칼리콘을 저술했다. 즉, 디다스칼리콘은 책을 어떻게 읽고 학문을 수양할 것인지에 대한 지침서였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저자 이반 일리치는 후고의 저서를 해설하면서 당시에 ‘책을 읽는’ 행위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상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

중세의 책 읽기를 알아보기 앞서, 그렇다면 나는 책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읽는가? 나는 주로 우리 집 거실에 앉아서 읽거나, 밖에서 읽을 때는 주로 도서관, 지하철, 벤치, 카페 등에서 가방에 휴대한 책을 꺼내서 읽는다. 소리 내어 읽지는 않으며 눈으로 조용히 읽어 내려가고 이따금 인상 깊은 구절에 밑줄을 긋고 옮겨 적기도 한다. 만일 주석이 표시되어 있는 텍스트일 경우, 필요에 따라 주석을 찾아보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이다. 이런 책 읽기 방식은 현대에 ‘읽는’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나는 시각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점자책을 읽지 않기에, 이런 방식은 적어도 점자책을 읽지 않는 시력이 온전한 사람들에 한해 해당된다.)  일상적인 책 읽기를 길고 불필요할 정도로 자세히 묘사한 이유는, 여기서 묘사된 책 읽기가 12세기 유럽의 수도원에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12세기 독서의 특징: 비휴대성, 낭독, 장(chapter)의 구분이 없음, 주석이 구분되지 않음 

 

첫째, 책의 외관과 휴대성에서 차이가 난다. 12세기 수도원에서 무엇을 읽는다면 그것은 단연 성경 혹은 그와 관련된 자료였다. 이러한 책은(텍스트의 포도밭에서는 이 당시의 책을 책이라 하지 않고 ‘필사본’이라 칭한다.) 외관도 화려했지만 무거웠다. 당시 성경은 5kg에 육박했고, 그 마저도 지금처럼 모든 복음서가 한 데 묶여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책은 휴대성이 없고 매우 귀했기 때문에 책이 놓인 장소를 방문하여 읽었다.

둘째, 읽는 방식도 달랐다. 눈으로 읽는 묵독이 아닌 소리 내어 읽는 낭독 방식이었다. 특히 성 베네딕토 규칙을 고수하는 수도원에서는 하루에 7번 다같이 모여 성서를 중얼거리며 읽는 의식이 수양의 한 방식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읽기 방식을 ‘수사식 읽기’라고 칭하며 현대의 읽는 방식인 ‘학자식 읽기’와 대조를 이룬다고 설명한다.

셋째, 후고 시대의 책은 장(chapter)의 구분이 없었다. 따라서 책의 원하는 부분을 쉽게 찾아서 읽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당시에 효과적으로 책을 읽으려면 암기법이 중시되었다. 암기를 하지 않으면, 모르는 부분을 그 때 그 때 찾으면서 읽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읽기는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이었고, 암기를 통해 읽으며 정신을 수련하기에 좋은 수단이기도 했다.

P.149 후고의 세대에 책은 인시피트가 입구인 복도와 같았다누가 어떤 구절을 찾고자 책을 넘긴다 해도 구절을 만나게  확률은 아무 데나 펼쳤을 때보다  높지 않았다그러나 후고 이후에 책에서 원하는 곳으로 들어갈  있고자신이 찾는 것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여전히 인쇄된 책이 아니라 필사본이지만테크놀로지라는 면에서는 이미 상당히 다른 물체였다서술의 흐름은 이제 문단으로 조각조각 나뉘고 총합이 새로운 책을 구성했다.

주) 인시피트: 책의 시작부분 

마지막으로 주석과 텍스트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주석이 별도의 작은 글씨로 분리되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이후부터 서서히 생겨난 현상이다.

P.152 읽는 사람의 정신을 거쳐간 것이면 그 어떤 것도 해당 텍스트의 주석으로 부적절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따라서 텍스트는 더 오래된 텍스트에 붙은 접선tangents으로서 성장하며, 옛 텍스트는 새 텍스트에 서서히 흡수되었다. 그러나 12세기 첫 사분기에 필사본 페이지에 새로운 종류의 질서가 나타난다. 행 사이에 주석을 붙이는 빈도가 줄어든다. 디자인에 의해 주석과 텍스트는 새로운 종류의 결합을 하게 된다. 이 질서에서는 각자에게 자기 몫이 주어진다. 주석은 지배적인 주 텍스트에 복속된다. 주석은 작은 문자로 기록된다.  

 

어려웠지만 귀한 시간여행

저자는 이런 변화의 과정을 탐색하면서 텍스트가 생산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어떻게 책 읽기라는 행위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것까지 상세히 논의하기 위해서는 서평이 엄청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한다.) 이 책은 수사식 읽기의 맛보기 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장이 있고, 휴대성이 있는 책이지만 논의를 이해하며 따라가기 위해서 끝까지 굉장한 인내심을 발휘해햐하는, 엄청난 미괄식 구성이기 때문이다.  온 정신을 집중해야만 겨우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지만 ‘읽기에 관한 대담하고 근원적인 통찰’이란 부제에 걸맞는 역사적 체험을 완수한 데에 뿌듯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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