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2(습관방) - 자유서평 기록들

<3차> 사건은 사고가 아니다

이태원댄싱머신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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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은 다 이런가. 가방끈이 긴 사람이 친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감정표현 하는 느낌이다. 작가는 나름 유명한 사람 같다. 이 책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일기장을 읽으며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형태다.


고백이다. 자신의 과거, 정확히는 임신 중절 체험을 낱낱이 밝힌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반응했는지, 당시의 일기를 들춰보며 세세히 적고 있다.


쉬쉬하던 이야기를 표면 위로 올려놓았다는 의미는 있으나, 재미는 없다. 그래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상황과 저자의 감정이 변하는 서사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느낄 수 있다.


임신을 확인하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문학과 사회학 수업을 들었고, 학생 식당에 갔고, 점심과 저녁엔 학생들만 다니는 파뤼쉬 바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제 그들과 같은 세상에 있지 않았다. 배 속에 아무것도 없는 여자애들, 그리고 내가 있었다.

 _아니 에르노 「사건」


망설이고 고민하다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받는다. 필요한 건 의외로 단순했다.


모든 것이 단순하고 마음을 놓이게 했다. 어찌 되었든 L.B는 거기에서 벗어나 내 앞에 있었으니까. P.-R. 부인은 400프랑을 받았다. L.B.는 알아서 그 돈을 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주소와 돈, 이것이 당시 내가 필요로 했던 유일한 것이었다.

 _아니 에르노 「사건」


결국 중절이라는 사건을 겪는다. 생각보다 아주 긴 시간이 걸렸고, 저자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신성한 무엇처럼 1월 20일과 21일 밤의 비밀을 내 몸속에 간직한 채 거리를 걸었다. 내가 공포의 끝에 있었는지, 아름다움의 끝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자긍심을 느꼈다. 어쩌면 고독한 항해자들, 약물 중독자들과 도둑들, 혹은 다른 이들은 결코 가려고 하지 않는 곳까지 경험해 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자긍심처럼 생각되었다. 이런 감정의 무언가가 나로 하여금 이 이야기를 쓰게끔 이끌었다.

 _아니 에르노 「사건」


저자는 이를 사건으로 정의한다. 단순한 애피소드가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일이고, 이 사건을 통해서 스스로 여성임을 자각했다.


N. 의사의 진료실에 다시 갔다. 대수롭지 않은 검사를 한 뒤, 그는 웃으면서 찬사와 만족감을 드러내며 "잘 벗어났다." 라고 말했다. 엉겁결에 그도 내가 겼은 폭력을 개인의 승리로 타라꿈시키려고 나를 부추겼다. 그는 피임 도구라며 질 안쪽에 넣는 페서리와 살(殺)정자 젤리 두 개를 주었다.

 _아니 에르노 「사건」


사건은 사고가 아니다.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사전적 해석을 빌리자면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의미한다. 반면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받을 만한 뜻밖의 일을 의미하는데 거기엔 또 다음과 같은 해석이 뒤따른다. 주로 개인, 또는 단체의 의도하에 발생하는 일이며 범죄라든지 역사적인 일 등이 이에 속한다. 그렇다. 그런 이유로 유리는 교통사고를 교통사건이라 부르지 않으며, 살인사건을 살인사고라 부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월호 사고와 세월호 사건은 실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_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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