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3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유홍준 창비)
해외여행에는 연령의 리듬이 있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모두 화려하고 발달된 문명을 경험해보고 싶어해 파리, 런던으로 떠나는 배낭여행을 선호한다. 중년으로 접어들면 유명한 박물관과 역사 유적을 찾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를 여행한다. 그러다 중늙은이가 되면 역사고 예술이고 골 아프게 따질 것 없는 중국의 장가계, 계림 등 자연관광과 일본 온천여행을 선호한다. 그러나 노년이 가까워진 인생들은 오히려 티베트, 차마고도 등 인간이 문명과 덜 부닥치며 살아가는 곳을 보고 싶어 한다. 인간의 간섭을 적게 받아 자연의 원단이 살아 있는 곳에 대한 그리움이 노년에 들면서 깊어지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는 요즘 초년, 중년, 노년 여행 종합 선물 세트를 책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어 읽는 내내 재미있었고, 읽은 후에는 더 큰 여운이 남아 간접경험으로 누릴 수 있는 큰 호강이었다.
실크로드는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이 처음 명명하였다. 이 책은 돈황에서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 카슈가르까지 약 2000킬로미터 구간에 있는 다섯 오아이스 도시를 답사하고 썼다. 실크로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클라마칸사막의 생성에 관한 지리학 판구조론 이론을 알면 쉬워진다. 5500만년 전부터 인도판이 유라시아 대륙판을 향해 올라오기 시작해 마침내 충돌하면서 히말라야산맥이 불쑥 솟아났다. 충돌은 한 번이었지만 그 여진이 업앤다운 운동으로 이어졌다. 티베트고원으로 펑퍼짐하게 퍼지다가(down) 곤륜산맥으로 치솟았고(up), 다시 타림분지로 내려앉았다가(down) 천산산맥으로 출렁 치솟았고(up), 다시 준가르분지로 내려앉았다(down). 그리고 이렇게 지형이 완성되자 기후에 변화가 생겨서 남쪽은 몬순이 불어 인도양으로부터 습기를 공급받아 비가 많이 내리고, 북쪽은 히말라야산맥에 막혀 습기를 제공받지 못해 아주 건조해지고, 게다가 겨울철이면 고기압이 발달해 한랭 건조한 바람이 동아시아 쪽으로 불게 되면서 타림분지엔 타클라마칸사막이 생긴 것이다.
실크로드라고 하면 대개 카라바들이 낙타를 몰고 구릉을 따라 사막을 건너가는 처연한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나 실크로드가 열리기 훨씬 전부터 타림분지에는 작은 오아시스 왕국들이 넓게 퍼져 있었다. 카라반의 상품 교역은 오아시스 도시와 도시를 이어가며 행해졌다. 실크로드는 선이 아니라 점에서 점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상인들이 개척해놓은 그 길을 따라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왔다. 불교를 전파하러 가는 서역승과 불법을 구하러 중국에서 천축(인도)으로 가는 입축승의 발길이 이어졌다. 결국 죽음의 사막을 뚫는 것은 돈과 신앙이었다.
이 책의 저자 유홍준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계신다. 저서로 <나의 문화화유산답사기>(국내편 1~10, 일본편1~4), 미술사 저서<조선시대 화론 연구><화인열전>(1, 2) 등 많은 저서가 있으시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시다.
이 책은 천산남로의 투르판과 쿠차, 서역남로의 호탄과 카슈가르, 그리고 모래 속에 파묻힌 누란 등 다섯 도시로 엮여있다. 작가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쓰는 동안 세 가지 기조를 유지하며 썼다고 한다. 첫째는 문화유산 전공자로서 여행자의 길라잡이 역할은 한다는 의식으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려 노력했다. 둘째는, 현장에 가보지 않은 독자를 위해 그곳을 소개한다는 생각으로 실감나고 재미있게 썼다. 셋째는 대상을 해석하는 시각을 다양하게 해서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되게 유익하게 썼다.
이 책을 읽으며 역포자(역사공부 포기자)였던 나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지리와 문화, 예술, 종교, 경제 등 여러 가지 시각과 더불어 역사를 바라보니 입체적인 모습으로 도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투르판에서 하룻밤 머물게 된 것이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빛나는 장대한 도시 유적지인 교하고성과 고창고성, 비록 제국주의 탐험가들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베제클리그석굴,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도 많은 유물이 전하는 아스타나 고분군, <서유기>에 나오는 전설 속의 화염산, 근데 이슬람 유적인 소공탑, 거기에다 삶의 슬기가 낳은 인공수로 카레즈, 한없이 이어지는 싱그러운 포도구, 화려한 스카프와 동그란 모자를 쓴 파란 눈의 위구르인의 삶을 보면서 투르판의 자연과 역사와 문화유산이 주는 의미가 가슴 저미게 다가왔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p.56
둘째,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못하게 되어서 그런지 여행이 하고싶어졌다.
여행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경험을 확대시켜주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에서 우리는 크게 세 가지를 보고 배운다. 문화유산답사는 인류의 역사와 인문정신을 가르쳐주고, 도시 여행은 간 삶의 다양한 면모를 엿보게 하며, 자연 관광은 대자연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p.186
셋째, 이야기꾼 유홍준 교수님의 전설의 고향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 ‘양파의 하얀 꽃 같은 나라’ 누란의 슬픈 운명과 처연함을 문학 작품과 함께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김춘수 시인 <서풍부>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온통 풀 냄새를 널어놓고 복사꽃을 올려 놓고, 복사꽃을 올려만 놓고,
환한 햇빛 속에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뉘가 그런 얼굴을 하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p.54
이 책은 여행이 가고 싶어 몸이 근지러우신 분들, 사막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며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끼고 싶은 분과 역사를 내 삶과 연관해서 이해하고 싶은 분들, 사막을 간접 체험하며 이번 여름을 이열치열 시원하게 나고 싶은 분들에게 권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3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유홍준 창비)
해외여행에는 연령의 리듬이 있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모두 화려하고 발달된 문명을 경험해보고 싶어해 파리, 런던으로 떠나는 배낭여행을 선호한다. 중년으로 접어들면 유명한 박물관과 역사 유적을 찾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를 여행한다. 그러다 중늙은이가 되면 역사고 예술이고 골 아프게 따질 것 없는 중국의 장가계, 계림 등 자연관광과 일본 온천여행을 선호한다. 그러나 노년이 가까워진 인생들은 오히려 티베트, 차마고도 등 인간이 문명과 덜 부닥치며 살아가는 곳을 보고 싶어 한다. 인간의 간섭을 적게 받아 자연의 원단이 살아 있는 곳에 대한 그리움이 노년에 들면서 깊어지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는 요즘 초년, 중년, 노년 여행 종합 선물 세트를 책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어 읽는 내내 재미있었고, 읽은 후에는 더 큰 여운이 남아 간접경험으로 누릴 수 있는 큰 호강이었다.
실크로드는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이 처음 명명하였다. 이 책은 돈황에서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 카슈가르까지 약 2000킬로미터 구간에 있는 다섯 오아이스 도시를 답사하고 썼다. 실크로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클라마칸사막의 생성에 관한 지리학 판구조론 이론을 알면 쉬워진다. 5500만년 전부터 인도판이 유라시아 대륙판을 향해 올라오기 시작해 마침내 충돌하면서 히말라야산맥이 불쑥 솟아났다. 충돌은 한 번이었지만 그 여진이 업앤다운 운동으로 이어졌다. 티베트고원으로 펑퍼짐하게 퍼지다가(down) 곤륜산맥으로 치솟았고(up), 다시 타림분지로 내려앉았다가(down) 천산산맥으로 출렁 치솟았고(up), 다시 준가르분지로 내려앉았다(down). 그리고 이렇게 지형이 완성되자 기후에 변화가 생겨서 남쪽은 몬순이 불어 인도양으로부터 습기를 공급받아 비가 많이 내리고, 북쪽은 히말라야산맥에 막혀 습기를 제공받지 못해 아주 건조해지고, 게다가 겨울철이면 고기압이 발달해 한랭 건조한 바람이 동아시아 쪽으로 불게 되면서 타림분지엔 타클라마칸사막이 생긴 것이다.
실크로드라고 하면 대개 카라바들이 낙타를 몰고 구릉을 따라 사막을 건너가는 처연한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나 실크로드가 열리기 훨씬 전부터 타림분지에는 작은 오아시스 왕국들이 넓게 퍼져 있었다. 카라반의 상품 교역은 오아시스 도시와 도시를 이어가며 행해졌다. 실크로드는 선이 아니라 점에서 점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상인들이 개척해놓은 그 길을 따라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왔다. 불교를 전파하러 가는 서역승과 불법을 구하러 중국에서 천축(인도)으로 가는 입축승의 발길이 이어졌다. 결국 죽음의 사막을 뚫는 것은 돈과 신앙이었다.
이 책의 저자 유홍준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계신다. 저서로 <나의 문화화유산답사기>(국내편 1~10, 일본편1~4), 미술사 저서<조선시대 화론 연구><화인열전>(1, 2) 등 많은 저서가 있으시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시다.
이 책은 천산남로의 투르판과 쿠차, 서역남로의 호탄과 카슈가르, 그리고 모래 속에 파묻힌 누란 등 다섯 도시로 엮여있다. 작가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쓰는 동안 세 가지 기조를 유지하며 썼다고 한다. 첫째는 문화유산 전공자로서 여행자의 길라잡이 역할은 한다는 의식으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려 노력했다. 둘째는, 현장에 가보지 않은 독자를 위해 그곳을 소개한다는 생각으로 실감나고 재미있게 썼다. 셋째는 대상을 해석하는 시각을 다양하게 해서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되게 유익하게 썼다.
이 책을 읽으며 역포자(역사공부 포기자)였던 나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지리와 문화, 예술, 종교, 경제 등 여러 가지 시각과 더불어 역사를 바라보니 입체적인 모습으로 도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못하게 되어서 그런지 여행이 하고싶어졌다.
셋째, 이야기꾼 유홍준 교수님의 전설의 고향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 ‘양파의 하얀 꽃 같은 나라’ 누란의 슬픈 운명과 처연함을 문학 작품과 함께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이 책은 여행이 가고 싶어 몸이 근지러우신 분들, 사막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며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끼고 싶은 분과 역사를 내 삶과 연관해서 이해하고 싶은 분들, 사막을 간접 체험하며 이번 여름을 이열치열 시원하게 나고 싶은 분들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