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2(습관방) - 자유서평 기록들

<6차> 그래도 참 다행이야 <따귀 맞은 영혼>

정석헌
2020-07-27
조회수 1068

혼자 일하는 게 편하다. 결정도 내가 내리고 책임도 내가 지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내가 하는 일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공기관 홍보 영상 제작 일이 그렇다. 작가가 필요하고 촬영 감독이 필요하고 조명, 음악 감독과 편집 감독도 필요하다. 그리고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이끄는 총 감독도 필요하다. 난 총 감독에 가깝다. 


여러 사람이 한 데 어우러져 일을 하다 보면 피치 못할 문제들이 발생한다. 사소한 것부터 큰 실수까지 종류가 108가지도 넘는다. 모든 책임은 총 감독의 몫이다. 일에 있어선 핑계 따윈 통하지 않는다. 최근 일을 하다 마음 상한 일이 생겼다. 믿고 맡겼던 업체가 책임감 없이 일을 처리하는 걸 겪었기 때문이다. 편하게 해주려고 편법을 썼던 일이 화근이었다. 자세히 얘기는 안 해 내막은 잘 모르겠다. 모두 저마다의 사정이 있으니까. 


문제는 납기가 코앞이란 것이다. 납기가 다가올수록 스트레스는 점점 불어났다. 혼자 견디려 했는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돼버렸다. 요 며칠 책도 안 읽히고 일도 손에 안 잡힌다. 머리도 멍하다. 이대로 손놓고 있다간 아무것도 안되겠다 싶어 '내가 한 번 만들어볼까'하고 영상 편집을 해보려니 커피숍에 앉아 노트북을 켰는데 집중이 안 된다.


다음 주 화요일이 최종 시사다. 지금부터 시사까지 48시간 조금 더 남았다. 아는 업체에 모두 전화를 돌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시간에 맞출 수 없니 다였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누구나 일을 맡겠지. 역시나 시간이 문제다. 아무도 맡아주지 않아도 누군가 맡아줘도 총책임자는 나다. 뭐라도 해야 한다. 아직 48시간이나 남았으니. 


결과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예전엔 마음 상하면 그 여운이 한 달은 넘게 지속됐는데 이제는 3일이면 사라지는 것 같다. 익숙해진 건지 책 덕분에 내력이 생긴 건지 모르지만 잘 모르겠다. 뭐가 됐든 정말 다행이지 싶다.  

우리가 어떤 일을 자기와 관련된 것으로 받아들일 때, 대체로 그것은 좋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 긍정적인 일은 모두 무시하거나, 아니면 다른 것, 즉 행운이나 우연 덕분으로 돌리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부정적인 자기 상만 굳어져서 남이 우리에게 미소를 지어도 기뻐할 줄 모르고, 칭찬해 주어도 인정받았다고 느낄 줄 모르게 됩니다.  

칭찬을 물리친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마음 상함을 극복한다는 것은 어떤 일을 자신과 관련지어보되, 주변 세계의 긍정적인 기호, 즉 우리의 자존감을 강화시켜주는 기호와 연결시키는 능력을 얻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귀 맞은 영혼, 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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