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2(습관방) - 자유서평 기록들

<6차> 올드걸의시집

김근희
2020-07-27
조회수 1115

은유 지음, 서해문집 펴냄



어느 날 독서모임 친구가 " 한번 읽어봐요. 너무 좋아요."라며 책 한 권을 쓱 내밀었다. 평소에 친구가 사모하던 은유 작가의 산문집이었다. 읽으면서 내 생각이 났단다.

요새 나는 부에 관한 책들만 읽던 차였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오르는 고딩 아들의 학원비에 갈수록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 등으로 부자가 삶의 목표인냥 눈에 불을 켜고 부자, 돈에 관련 책들만 읽고 있었다. 이런 나에게 삶의 숨고르기처럼 다가온 책이다.


2012년 첫 단행본으로 나왔고 3년만에 절판되었다가  원본 그대로 이번에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은유 작가는 생활밀착형 작가라고 한다. 또한 은유 작가의 글은 한 번 읽는 것으로 끝날 수 없고 두 세 번은 다시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책들을 썼다고 한다. 은유라는 작가는 독서모임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그후로 유튜브를 통해서 몇번 보았다. 방송매체에 나오는 은유작가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나와는 완전 다른 연예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니 돈은 잘 벌겠네.","어려움은 없이 잘 살겠네", "돈도 잘벌고 글도 잘쓰고 완전 부럽다", "책을 얼마나 읽고 쓰면 저런 멋진 말들이 입에서 술술 나올까" 그저 딴 세상에 사는 부러운 존재로만 인식이 되었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가까운 이웃 같다는 생각으로 바꼈다. 그리고 은유 작가의 호기심, 관찰력, 표현력의 매력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출근길 처음 펼친 책속의 글들은 역시나 소문대로 첫페이지부터 "찌릿" 내가슴에 스피드있게 들어왔다. 남편과의 갈등 속에서 살아야해 말아야해 고민하고 아내, 아이공부와 학원비 걱정을 하는 엄마, 오늘은 무엇을 해먹어야하나 메뉴 걱정하는 주부로, 일을하는 직업인으로 틈틈히 시간을 쪼개어가며 쓴 글이다. 은유작가의 삶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읽어 내려가는 것 같았다.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은유작가의 미세한 감수성의 표현들과 매력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머리 속에, 가슴 속에 꼬깃꼬깃 구겨져서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던 생각들, 느낌들, 감정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손으로 잘펴서 로즈마리오일 한방울 톡 떨어트린 분무기의 물을 뿌려 깔끔하게 다림질 해놓은 정갈한 원피스 같은 느낌의 글이다. 걸어놓은 원피스에 가벼운 바람이 지날때마다 은은한 로즈마리향이 나의 전신을 황홀하게 한다. 

책 전체를 필사하고 싶을 정도로 모든 글들이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읽기를 작정한 분들을 위해 베스트 공감들 중 한 컷만 옮겨 본다.

야무지게 살려니 체력도 딸린다. 오래된 휴대폰처럼 일 하나 처리하면 어느새 배터리가 한 칸만 남는다. 아무래도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야 할 때인가 보다. 게으름을 지혜의 알리바이로 삼지는 말되, 게으름이 아닌 느긋함으로, 조급함이 아닌 경쾌함으로, 주변의 것들과 어우러지는 행복한 삶의 속도를 만들어 나가야겠다. 올라갈때  못본 그 꽃,내려올 때 볼 수 있도록.

p255

나는 은유 작가와 동갑내기이다. 그래서 이 글이 더  크게 공감이 되었나 보다. 반세기를 살아온 시점에서 재수 없으면(?) 반세기를 더 살 수 있는 나에게 주는 삶의 지혜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자녀들과 남편들이 읽으면 엄마라는, 아내라는 여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고, 같은 년배들은 나처럼 격한 공감으로 읽는 동안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읽으면서 내가 은유 작가 작품을 더 찾아 읽게 될 거라는 예언을 감히 해본다. 보석같은 책을 선물해준 나의 귀한 인연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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